현장방문(안홍철 사무총장)
우리는 심고 물을 주지만…
/ 라오스 왕흐아 초등학교에 맑은 물 붓기
한아봉사회가 봉사선교를 하는 동남아시아에는 유난히 바다가 많습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드넓고 파란 바다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 속한 11개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나라가 있으니 그게 바로 라오스입니다. 라오스는 해안선이 없고 기나긴 메콩강만 국토의 중심을 흐르며, 또한 중북부쪽에는 험준한 산악지형이 형성되어 있는 초록의 나라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에 호치민이 이끄는 북베트남군(베트콩)은 미군의 공격을 받지 않고 전쟁 물자를 실어 나르고자 이웃 나라인 라오스의 산악지형을 따라 물자 보급로를 만들었는데 이를 ‘호치민 루트’라고 합니다.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 라오스 지역의 호치민 루트를 철저하게 폭격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남하하는 북베트남군과 라오스 공산반군을 저지하고자 라오스의 산악지역에 있는 소수족인 몽족(Hmong)을 훈련시켜 맞서도록 하였습니다. 이 ‘비밀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북베트남군의 승리로 귀결되고 라오스가 공산화되자, 몽족은 미국이 감행한 대리전의 희생양이 되어 라오스에서는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몽족은 지금까지도 라오스에서는 소수민족으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아봉사회의 협력선교사인 장기선 선교사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인접한 톨라콤 군의 교육청과 협력하여 사역하면서 ‘왕흐아’라는 마을에 사는 몽족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왕흐아 마을은 2,000여명의 몽족 주민들이 모여 사는 해발 1,000미터의 산지마을로 더운 나라인 라오스에서 소나무가 자랄 정도로 높은 고지입니다. 수도 비엔티엔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거기서 다시 1시간 정도 황토먼지의 산길을 꾸불꾸불 올라가서야 만날 수 있는 마을입니다. 왕흐아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허름한 검문소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만큼 감시받고 차별받는다는 증거가 되겠지요.
왕흐아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하나 있는데 300여명의 아이들이 공부를 합니다. 교실은 오래 전에 나무로 지었고 땅바닥에 낡은 책상과 걸상을 놓고 수업을 합니다. 교실은 무서운 열대의 흰개미들이 나무를 파먹고 들어가 군데군데 구멍이 뚫리고 기둥 밑둥치가 하얗게 삭아져 버렸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몽족 주민들이지만 교육열은 우리네 부모님들만큼 뜨거워서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하여 돈을 모아 벽돌과 시멘트를 사서 교실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돈이 부족하여 교실은 기초만 겨우 짓고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장기선 선교사는 왕흐아 초등학교의 딱한 사정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한국교회를 찾아다니며 도움의 손길을 구했습니다.
강화성광교회가 먼저 사랑의 화답을 하였고 서소문교회는 교회 설립 70주년 기념사업으로 5개의 교실을 지었습니다. 교실 건축은 마을 주민들이 순번을 정하여 일손을 대고 선교사는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하여 교실은 벽돌로 예쁘게 건축이 되었고 우리는 최근에 왕흐아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12명의 선생님들은 한아봉사회가 수년째 왕흐아 마을에 쏟아부은 사랑의 역사에 깊이 감사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이 보면 수줍음으로 눈맞춤을 피하고 뒤돌아서면 천진한 웃음으로 우리들을 반겨주었습니다. 봉사선교의 현장에서 수십명의 아이들이 건네는 티 없는 눈망울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선교 사역이 선사하는 또 하나의 선물이라 하겠습니다.
왕흐아 초등학교에 도움과 후원의 손길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증평제일교회에서 자기들이 운영하는 교회의 카페 수익금 가운데 일부가 장학금으로 쓰여지길 바랬고 이것이 라오스 장기선 선교사와 연결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카페 수입 중에서 매월 15만원을 장학헌금으로 보내주십니다. 이 헌금으로 처음에는 열 명의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왕흐아 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총 11개 반이 있었기 때문에 한 반에 두 명씩 해서 22명에게 육성회비, 학용품 구입비 명목의 장학금을 주기로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공부 잘 하는 학생을 한 반에서 두 명씩 뽑아 장학금을 주자고 했지만 교장선생님은 우수생 한 명, 빈곤가정 한 명에게 주는 것이 더 낫다고 하였습니다. 선교현장에서는 현지의 욕구를 파악하고 그에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아 학교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아이에게 3개월에 20불씩 장학금으로 후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보다 삶의 형편이 좀 더 열악한 라오스에서는 작은 것도 귀하게 쓰입니다. 우리 수준으로는 한 명에게 주어도 그리 넉넉하지 않은 금액이지만 왕흐아 마을에서는 22명의 새싹들을 길러냅니다. 크지 않은 물질이 라오스에서는 우리의 정성을 보여주고 한국교회의 사랑을 전하며 하나님의 숨겨진 마음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모아서 전하는 물질(material)이 먹이고 입히며 보듬는 하나님의 어머니같은 마음(mater)을 드러내는 귀한 순간입니다.
눅 12:33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들이 가진 소유가 보물이 된다고 합니다. 물질이 보물이 되는 순간이지요. 그러면 이 때 필요한 마음가짐은 무엇일까요? 분별, 특별히 재물과 물질에 대한 분별심입니다. 우리가 가진 이 재물과 물질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분별심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물질과 소유와 재물은 나의 것이지만, 그러나 나의 것만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재물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있고, 그 기쁨이 흘러넘쳐서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 재물과 소유가 나의 것만은 아니기에, 주어진 것이기에 그것을 분별하여 소유를 팔고, 또 주는 것, 그러면 그것이 하늘의 보물이 된다고 합니다. 이 순간이 우리의 소유가 보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우리 교회가 하는 선교도 하나님의 것을 나누고 주는 것이기에 종국에는 하나님의 선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만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것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셨으니 우리도 우리가 가진 것을 주고 나누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동남아시아 봉사선교 현장에 사랑으로 생명의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가 많이 가지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가진 것으로 믿음과 소망의 물을 붓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씨앗을 심고 물을 주지만 생명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고전 3:6). 그래서 우리는 봉사선교의 현장에 지금도 사랑으로 씨앗을 뿌리고 믿음과 소망의 물을 부어 들입니다. 지금은, 당장은 싹이 나지 않고 꽃이 피지 않고 열매도 보이지 않지만 생명으로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맑은 물을 계속해서 붓습니다. 우리는 라오스 쌩싸이 센터에도, 미얀마의 양곤 변두리 학사관에도, 베트남 빈롱성 사랑의 집짓기 현장에도, 캄보디아 프놈펜기독교연합봉사관에도 한국교회와 함께 협력하여 맑은 물을 붓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수님을 만난 다음 날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작은 두레박을 들고 생명의 맑은 물을 퍼올려 가난하고 약한 이웃의 발치에 붓고 또 붓습니다. 자라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